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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철 동문님 (4회) 100만달러 기부
관리자 / 등록일 06-01-13 / 조회 1,329
모교 약학대학 4회 (1956 학번) 졸업생으로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고 계시는 심상철 동문님께서 우리 약학대학 후학을 위해서 발전기금 100만달러를 약정해 주셨습니다. 심상철 동문님께서는 1월 16일 11시 30분에 우리 약대를 방문하실 예정입니다. 만나뵙고 싶으신 경우에는 약대학장실로 오시면 됩니다. 심상철 동문님의 귀한 모교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래 기사 참조>
캐나다 심상철동문 ‘死後보험금‘ 100만달러 모교에 장학금 기증
고등학교 2학년(군산고)때 부친의 사업이 크게 실패하여 정말 힘든 학창시절(성균관대 약학과 56학번)을 보냈다. 대학교 근로학생장학회(대학교재 등사가 주 업무)가 없었다면 졸업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머나먼 타국(캐나다 74년 이민)에서 이제 칠순(1937년생)이 되어 조국과 모교생각이 간절했다. 오랜 세월 등진 조국과 모교에 빚을 진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무언가 조그마한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2001년 아내(강성옥·60)와 함께 가입한 ‘Trans America’라는 해외 유명 보험사에 가입한 ‘사후연금보험’ 2백만달러(한화 20여억원)이었다. 사후에 받을 ‘막대한’ 보험금중 100만달러가 모교에서 장학생 육성기금으로 쓰일 수만 있다면 그나마 사회에 환원한 셈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10년만의 귀국길에 실천에 옮기고자 결심했다. 그 배경에는 아내의 적극적인 이해와 격려가 한몫 했다. 아내의 흔쾌한 동의가 없었다면 어려운 일일 수도 있었다.
★보험금 수혜자를 ‘성균관대학교’로 못박은 공증절차 밟아★
어렵사리 보험금 수혜자를 ‘성균관대학교’로 바꾸는 절차를 거친 후 공증서까지 가지고 귀국하는 길은 오랫동안 마음의 짐을 벗은 것 같아 홀가분했다. 200만달러 중 100만달러는 5명의 자녀에게 각각 20만달러씩을 주기로 했다. '큰 돈'이 생기면 '시험'을 받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변하기 전에 ‘사회 환원’의 길을 찾고자 한 것이다. 미담의 주인공 심상철(沈相哲·70·캐나다 거주)씨는 토론토시에서 ‘슈퍼마켓’을 경영하며 30년 동안 오직 ‘한 우물’만을 팠다. 매일 오전 7시부터 밤10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종업원도 두지 않고 부부가 똑같이 구슬땀을 흘리며, 슈퍼마켓과 ‘코인 라운지’(빨래방)를 운영한 덕분에 큰 돈은 아니지만 5남매 뒷바라지를 하고 부부가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을 정도는 됐다. 이번에 모교에 장학금 기부를 하게 된 데는 2005년 7월 성균관대학교 서정돈 총장이 토론토을 방문하여 동문들을 찾은 것과 해외생활 중 처음으로 지난해 7월 미국 애틀란타에서 열린 북미주연합동문회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해하고 격려해준 현모양처 아내가 너무 고마워★
이들 부부의 소망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적립한 보험금으로 모국의 모교후배들이 나라를 이끄는 정직한 지도자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도 여력이 있으면 ‘부부 장학기금’을 만들겠다고 한다.
<아래 기사 참조>
캐나다 심상철동문 ‘死後보험금‘ 100만달러 모교에 장학금 기증
고등학교 2학년(군산고)때 부친의 사업이 크게 실패하여 정말 힘든 학창시절(성균관대 약학과 56학번)을 보냈다. 대학교 근로학생장학회(대학교재 등사가 주 업무)가 없었다면 졸업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머나먼 타국(캐나다 74년 이민)에서 이제 칠순(1937년생)이 되어 조국과 모교생각이 간절했다. 오랜 세월 등진 조국과 모교에 빚을 진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무언가 조그마한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2001년 아내(강성옥·60)와 함께 가입한 ‘Trans America’라는 해외 유명 보험사에 가입한 ‘사후연금보험’ 2백만달러(한화 20여억원)이었다. 사후에 받을 ‘막대한’ 보험금중 100만달러가 모교에서 장학생 육성기금으로 쓰일 수만 있다면 그나마 사회에 환원한 셈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10년만의 귀국길에 실천에 옮기고자 결심했다. 그 배경에는 아내의 적극적인 이해와 격려가 한몫 했다. 아내의 흔쾌한 동의가 없었다면 어려운 일일 수도 있었다.
★보험금 수혜자를 ‘성균관대학교’로 못박은 공증절차 밟아★
어렵사리 보험금 수혜자를 ‘성균관대학교’로 바꾸는 절차를 거친 후 공증서까지 가지고 귀국하는 길은 오랫동안 마음의 짐을 벗은 것 같아 홀가분했다. 200만달러 중 100만달러는 5명의 자녀에게 각각 20만달러씩을 주기로 했다. '큰 돈'이 생기면 '시험'을 받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변하기 전에 ‘사회 환원’의 길을 찾고자 한 것이다. 미담의 주인공 심상철(沈相哲·70·캐나다 거주)씨는 토론토시에서 ‘슈퍼마켓’을 경영하며 30년 동안 오직 ‘한 우물’만을 팠다. 매일 오전 7시부터 밤10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종업원도 두지 않고 부부가 똑같이 구슬땀을 흘리며, 슈퍼마켓과 ‘코인 라운지’(빨래방)를 운영한 덕분에 큰 돈은 아니지만 5남매 뒷바라지를 하고 부부가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을 정도는 됐다. 이번에 모교에 장학금 기부를 하게 된 데는 2005년 7월 성균관대학교 서정돈 총장이 토론토을 방문하여 동문들을 찾은 것과 해외생활 중 처음으로 지난해 7월 미국 애틀란타에서 열린 북미주연합동문회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해하고 격려해준 현모양처 아내가 너무 고마워★
이들 부부의 소망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적립한 보험금으로 모국의 모교후배들이 나라를 이끄는 정직한 지도자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도 여력이 있으면 ‘부부 장학기금’을 만들겠다고 한다.